Essay

추억

필라리 pilary 2023. 12. 22. 23:23

 편도선 수술 후에 휴가를 쓰고 며칠 째 본가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다. 통증이 꽤 심하다보니 진통제 없이는 버티기 힘든 상태이지만 복용하고나면 몇 시간은 꽤 괜찮다. 본가에 내려온 후로 한번도 밖으로 외출한 적이 없었는데, 엄청 춥기도 했고(저번 주까지 이례적으로 기온이 높다가 이번 주에 급작스럽게 한파가 닥쳤다.) 통증이 심해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걷고 싶기도하고 햇빛도 쐬고 싶은 마음에 외출하기로 했다.

 

 어디로 나가서 산책을 좀 하고 올까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로 정했다. 지금 본가가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빌라 단지인데, 꽤 근처이긴해도 단지 안으로 들어가 걸을 일이 없어 오랜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몇 해 전에도 혼자 가서 둘러보고 온 적이 있다. 그때도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면서 옛 기억을 추억한 적이 있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지금 내 기억에 그려지는 그 동네의 모습은 여전히 어린 시절 내 눈에 담겼던 모습이다.

 

 동네 초입부터 참 반가웠다. 7살 때 멀리서 이 곳으로 이사와서 초등학생 때까지 보냈던 곳이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뛰놀던 동네 곳곳을 다시 내 눈으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꽤 재밌는 방법으로 추억한 것 같은데, 다음 골목을 들어가기 전에 잠깐 멈춰서 머릿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 풍경이나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나서 골목을 들어가 그 풍경, 기억들과 비교하며 즐겼다. 남아있는 건물도 있고 미처 기억 나지 않았지만 지나면서 떠오르는 기억도 있었다. 친구들이 살았던 빌라 건물도 하나 씩 찾아가며 구경하고 놀러 갔던 친구들 의 집 내부 구조도 떠올려봤다. 참 신기하게도 구조도 기억나고 뭐하면서 놀았는지도 기억이 난다. 내가 살았던 빌라도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추억할 수 있게 남아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동네 구석구석에서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꽤 선명하게 기억나니 즐거웠다. 그때는 하교하고 나면 집에 가방 던져놓고 저녁 먹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밖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참 다양한 추억이 동네 곳곳에 박혀있다. 이런 기억들을 20년 넘게 지난 지금 추억할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같은 길을 다시 돌아와서 걷고 뒤돌아서 다시 풍경들을 눈에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아련하기도 했다. 그 시절이 그리운 마음도 들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동네로 와서 산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D+5~7(수술 후)

  • 통증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아마 수술 부위를 덮고 있는 곱이라고하는 하얀 막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상처 부위가 아물어가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이 때문인지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 통증이 심해지니 진통제는 필수인 상태이다. 너무 자주는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약이 마냥 좋지는 않을 것 같아서...
  • 내가 봤던 블로그 후기들에 비해서는 상처 부위 회복이 조금 빠른 것 같다. 그 이유를 고민해봤는데, 잘먹고 많이 먹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퇴원한 당일 부터 죽이나 빵, 우유, 단백질 음료 같은 것들을 일부러라도 더 많이 먹었다. 식욕도 있고 통증이 심하진 않아서 가능했다. 회복에는 특히 상처가 아무는 데는 잘먹는게 참 중요한 것 같다. 내 살이될 재료가 많으면 좋을테니까.
  • D+7 인 오늘은  일반식을 시도해보았다. 점심에는 잔치 국수를 가위로 잘라서 천천히 먹었고, 저녁에는 죽을 먹으면서 가족들이 시킨 족발 고기를 몇 점 먹었다. 역시 일반식이 훨씬 맛있다.